화씨 451
가끔 인터넷에서 읽을 만한 책이 있나 찾아보곤 한다. 그러다 예전에 읽었던 레이 브레드버리의 '화씨 451'의 리커버 특별판이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읽은 지 시간이 꽤 지났던 터라 내용이 가물가물했는데, 재밌게 읽었던 것으로 기억하는지라 다시 읽어 봐야겠다고 생각해서 구매했다. 그런데 한 번 읽었던 책이라 그런지 이상하게 손이 가질 않았다. 미루고 미루다 최근에야 읽게 되었는데, 한 번 손에 잡으니 이제까지 미뤄두었던 것이 무색하게 마치 뭐에 홀린 듯, 쫓기듯이 읽어 버렸다.
다시 읽은 '화씨 451'은 예전에 읽었던 '화씨 451'과 다른 책인 것처럼 새로웠다. 책은 달라진 것이 없는데(번역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저자는 '화씨 451'을 출판 후 내용은 수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시간이 흘렀다고 이렇게 다르게 느낄 수 있구나 싶었다.(그런데 단순히 내용 대부분을 까먹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특히 그저 악당 역할 정도로 생각했었던 비티 서장에게서, 가이 몬태그보다 더 큰 존재감을 느끼는 것이 그러했다.
본문에서, 독자들은 비티의 발화를 통해 그가 상당한 지식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는 여러 문장을 인용하는 화법을 즐기는데, 그럴 때면 비티가 사실 열렬한 애독자가 아닌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그런 그가 어쩌다 방화수(fireman) 서장이 될 정도로 책을 증오하게 되었는지 본문에 명확히 나오지 않는 점은 아쉬운 일이다.(본문은 아니지만 후기에서 밝혀진다.)
'화씨 451'과는 별개로 저자의 후기나 인터뷰도 상당한 읽을거리였다. 몰라도 되는 사소한 정보들도 알게 되는데, '몬태그'나 '파버'가 제지회사와 문구회사에서 따온 이름이라는 것이나, 로봇 사냥개의 모티브가 코난 도일의 '바스커빌 가의 개'였다거나, 저자가 파버를 심장마비로 죽이는 방향을 심각하게 고민했다거나(핵폭탄이나 심장마비나 파버의 운명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비티에게 읽지는 않고 보기만 하는 비밀 도서관이 있었다거나 하는 부분도 소소한 재미였다.
또한 후기나 인터뷰에서 저자의 가치관이 돋보였는데, 자기만의 뚜렷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점은 긍정적으로 와 닿았다.특히 작품 검열에 대해 분노하는 모습을 보였다. 세계 문학 작품집을 위해 본문을 줄이거나, 교과서에 실리며 몇몇 어휘를 제거 한다던가, 출판사에서 청소년을 고려해 검열 작업을 하는 등등에 대해 분노하며, '책을 검열하고 불태우는 미래 사회를 그린 이 소설을 읽은 학생들이 이 얄궂은 아이러니를 알려주었다.'라고 언급했다. 이러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저자였기에, '화씨 451'과 같은 글을 쓸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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