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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신들은 죽임 당하지 않을 것이다 - 켄 리우

JE414 2025. 4. 25. 19:55

 책을 구입한지는 꽤 됐는데 다 읽은 건 얼마 전이었다. 읽고 나서는 진작 읽을 걸 그랬다고 후회 될 정도로 취향에 맞는 책이었다.

 책의 장르는 SF이고 여러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에서도 '신들은 목줄을 차지 않을 것이다', '신들은 순순히 죽지 않을 것이다', '신들은 헛되이 죽지 않았다'라는 단편 연작이 메인 이야기인 것 같다. 하지만 책에 수록된 각 단편들 모두 저마다의 특색이 있어서 어떤 게 더 재밌다고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단편 하나하나가 임팩트 있었다.

 그래도 좀 더 많이 생각 나는 단편을 뽑자면 첫 번째로 수록된 단편 '루프 속에서'다. 읽는 내내 공상 속 이야기라기 보단 현실에 가까운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해당 단편 속 사회에서는 사람이 아니라 드론이 전쟁을 대신한다. 물론 모든 나라가 그런 것은 아니고, 기술력 있고 부유한 나라 만 가능한 일이다. 다만 아직 완전 자동 전투 기계가 발명되지는 않았던 사회였기 때문에, 사람이 드론을 원격으로 조종해야 했다.

 단편의 주인공인 카이라의 아빠도 그러한 드론 조종사 중 한 명이었는데, 그는 자신의 직업 때문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어린 시절 아빠의 변화와 죽음을 겪은 카이라는, 대학 졸업 후 완전 자동으로 동작하는 전투 로봇 '가디언'을 개발하는 회사의 프로그래머가 된다. 아빠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카이라가 맡은 부분은 '윤리 제어 장치'라는 모듈을 만드는 작업으로 로봇이 사격을 개시할 때 부수적 피해를 최소화하는 제어, 즉 양심을 만들어 주는 일을 했다. 그러나 어느 날 가디언이 무고한 어린아이를 죽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 아이는 갑자기 아군을 향해 달려갔는데, 그 아이는 정신에 문제가 있는 아이였고 기계가 내뱉는 경고음에도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폭탄 테러 같은 것으로 판단한 로봇은 프로그래밍 된대로 대처한다.

 그 사고 영상을 보던 카이라는 어느 더운 날 시원한 사무실에 앉아 프라페를 홀짝이며 아동의 생명에 부여된 기존 값을 삭제하고 새 값을 입력했던 것을 떠올린다. 하지만 가디언과 관련된 프로그래밍은 모두 군부의 검수를 받은 것들이었고, 교전 수칙에 어긋나는 것도 없었으므로 처벌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카이라는 이런 상황에 혼란스러워하면서 소설은 끝난다.

 

"문명국이 살기 좋다는 이유가 전쟁을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이다. 누군가 다른 이가, 무언가 다른 것이 대신 생각해 줄 테니까." 

 

 휴전 국가에서 살고 있기는 하지만 전쟁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저 기술의 발전에 따라 전쟁도 점점 기계화, 자동화가 되지 않을까. 그리고 기계가 대신 전쟁을 하게 된다면 아군이 덜 죽고 다치게 될테니 더 좋지 않을까 정도의 얕고 윤곽 없는 생각 뿐이었다.

 전쟁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 대부분은 기술과 전쟁에 대해 이 정도의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다. 당장 직접적으로 관련있는 것이 아니기도 하고, 또 전쟁이라는 분야에서 어느 한 쪽의 이익이 되는 것이 어떤 기회 비용을 가져올지 생각하는게 껄끄러운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게 단지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만 해당하는 것일까?

 

요즘은 특히 더 기술 발전 속도를 체감하고 있다. 자고 일어나니 ML 모델들이 쏟아져 내리고, 초반에는 비교적 생소했던 AI나 LLM에 대해서도 이제는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이미 생활 전반에 깊숙히 침투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술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기회 비용은 무엇인지 그런 복잡하고 번거로운 고민을 주체적으로 하지 않는다면, 누군가가 대신해 줄 것이다. 그러나 총구 앞에 서는 건 누가 될 지 모르겠다.

 

 

최근 머신러닝 관련한 기술 책을 읽는데 이런 서문이 있었다.

 

"공상과학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현실 세계의 제약 없이 미래를 상상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다."

 

비슷한 말을 여러 번 듣기는 했지만 마침 이 책을 읽고 있었던 시기였다. 서문을 읽는 순간 이 책이 떠오르면서 타이밍 한 번 절묘하다고 생각했다.


 

책의 목차

  • 루프 속에서
  • 신들은 목줄을 차지 않을 것이다
  • 우수리 불곰
  • 1비트짜리 오류
  • 그 짐은 영원히 그대 어깨 위에
  • 장거리 화물 비행선
  • 카산드라
  • 신들은 순순히 죽지 않을 것이다
  • 북두
  • 풀을 묶어서라도, 반지를 물어 와서라도
  • 신들은 헛되이 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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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 : 알라딘

동시대 가장 주목받는 SF 환상문학 작가 켄 리우의 세 번째 단편 선집. 권위의 휴고상, 네뷸러상, 세계환상문학상을 40년 만에 첫 동시 수상한 대표작 「종이 동물원」으로 국내에서도 많은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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